Der Tod in Venedig・Tonio Krog | 토마스 만 | 김인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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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img src="/icons/aquarius_blue.svg" alt="/icons/aquarius_blue.svg" width="40px" /> “그렇다면 여행을 떠나자. 아셴바흐는 이 생각에 만족했다. 아주 멀리까지, 호랑이가 사는 곳까지 갈 필요는 없어. 침대차에서 하룻밤을 자고, 정겨운 남쪽 나라 어딘가 평범한 휴양지에서 서너 주 낮잠을 즐겨야지…….” _〈베네치아에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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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닿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한 갈망과 사랑, 그 감각적 아름다움에 대하여
💘 독일 문학의 거장이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인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두 편을 묶었다.
베네치아 여행과 작가로서의 고뇌와 사색을 담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작가 스스로 ‘일종의 자화상’이라 표현한 〈토니오 크뢰거〉는 모두 가닿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한 갈망과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특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콜레라가 창궐하는 베네치아에서 궁극의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체험하는 노작가의 갈등과 황홀이 섬세하게 드러난 걸작이다.
토마스 만의 대표작 두 편을 모은 이 책은, 예술성과 시민성, 그 좁힐 수 없는 괴리에서 탄생한 감각적 미학을 자신만의 세밀하고 사색적인 문장들로 정립해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필독서다.
‘진실로 신적인 아름다움’ 앞에 복수하듯 돌이킬 수 없이 빠져드는 감정
토마스 만은 스스로 경험하거나 직면한 문제를 시적이고 정교한 문장으로 풀어내며 인간의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투영되어 있다. 토마스 만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로 분한 노작가는 산책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기묘한 외양의 이방인에게 이끌려 “환각을 야기할 정도로” 강렬한 “여행에의 욕구”를 느끼고 베네치아로 향한다. 이방인이 깨우친 여행에의 욕구는 바로 명망 있는 작가로서 지녀야 하는 부담감과 ‘정신의 노예’로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의 방증이다. 베네치아에서 머물던 아셴바흐는 “가장 고귀한 시대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미소년 ‘타지오’를 만나 걷잡을 수 없이 그에게 매혹된다. 작가로서의 체면을 벗어던진 채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골목골목까지 소년을 뒤쫓고, 소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화장을 한다. 급기야 “진실로 신적인 인간의 아름다움” 앞에 완전히 굴복해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베네치아를 떠나지 못하고 충격적인 말로를 맞는다.
아셴바흐는 토마스 만과 마찬가지로 양친에게서 상반된 성향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아버지로부터는 엄격하고 강직한 시민성을, 어머니로부터는 자유로운 예술성을 이어받는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는 데는 아버지의 기질을 좀 더 요구받았고, 오로지 창작 활동을 위해 일평생 예술가로서의 자유와 열정을 짓누른 채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 억눌린 감성과 감각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타지오라는 ‘절대미’를 마주하며 완전히 폭발한다. 지성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복수하듯 감각적인 사랑에 돌이킬 수 없이 빠져든다.
작별의 시간이 도래하자 자신보다 힘없는 자에게 굽실거리던 감정이 잔인한 난폭함으로 방향을 바꿔 오랫동안의 노예 생활에 복수하려는 듯 보였다. 승리자는 패배자를 놓아주지 않고 패배자의 등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짓눌렀다.(〈베네치아에서의 죽음〉, 137쪽)
억제된 아셴바흐의 감각을 움직이는 데는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풍경과 분위기가 큰 역할을 한다.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곤돌라 사공에게 바가지를 쓸 뻔하지만, 아셴바흐는 매일 바다에 눈인사를 보내고 해변의 산책로나 안개 가득한 미지의 골목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베네치아의 매력에 점차 동화된다. 우리는 자주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거나 닿을 수 없는 대상을 갈망하고 동경하지만 희망하거나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것이 있고, 그럼에도 소망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아셴바흐는 끝내 타지오에게 가닿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지만, 그의 마지막이 어쩐지 완전하고 장엄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토마스 만의 대표작이자 작품 세계를 응축해놓은 중요한 작품
마스 만의 초기작이자 문학적 세계관이 집약되어 있는 〈토니오 크뢰거〉 역시 ‘일종의 자화상’이라 할 만큼 자전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인 ‘토니오 크뢰거’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아셴바흐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서는 청교도적 기질을, 어머니에게서는 열정적인 기질을 타고난다. 하지만 토니오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시를 쓰는 예술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며 시민사회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치부된다. 자연스레 자신과 다르게 인기가 좋은 동급생 ‘한스 한젠’과 ‘잉게보르크 홀름’을 동경하고, 잉게에게는 사랑의 감정까지 느낀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끝내 ‘낯선 존재’로 남은 토니오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여행지인 덴마크의 어느 섬에서 다정하게 춤을 추는 두 사람을 목격하고는 어린 시절처럼 심장이 요동치는 경험을 한다. 〈토니오 크뢰거〉는 시민성과 예술성이라는 중재될 수 없는 대립을 의식한 토마스 만의 대표작이자 작품 세계를 응축해놓은 중요한 작품이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 크뢰거〉의 두 주인공은 모두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토마스 만에게 바다는 “정돈되지 않은 것, 무절제한 것, 영원한 것”을 상징한다. 즉 바다로의 여행은 익숙한 일상적 삶, 타자를 의식하고 타자에 의해 규제된 삶이 아닌 자신이 소망하고 동경하는 삶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각기 다른 결말에 이른 것처럼 우리가 꿈꾸고 마주하는 바다, 여행, 삶의 모습은 어느 것 하나 예정되어 있거나 동일하지 않다. “수많은 존재 방식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큼 삶을 긍정하고 추동할 수 있는 게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