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ster of Ballantrae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이미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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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그의 얼굴에 혈색이 돌게 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증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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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고통이 낳은 비뚤어진 복수심과 모욕을 견디며 조용히 자란 복수심이 맞대는 칼날
🗡️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장편소설로 국내 초역.
스코틀랜드와 인도, 뉴욕을 오가는 형제 복수극으로, 방종하지만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형과 선하지만 따분한 동생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특히 형 ‘밸런트레이 귀공자’를 두고 스티븐슨은 “인간에게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악을 구현한 인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성경 속 카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를 연상시키는 형제간의 갈등은 가장 작은 단위에서의 원형적 인간관계를 나타낸다. 굵직한 사건들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면서도 섬세한 심리묘사를 놓치지 않는, 페이지터너로서의 스티븐슨의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는 세계, 악마가 던진 동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스코틀랜드의 명망 높은 듀리스디어 가문에 상반되는 성격의 두 형제가 있다. 형인 ‘제임스 듀리(밸런트레이 귀공자)’는 방종하고 소동을 일으키지만, 자신만만한 태도 덕에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조금 더 진지해지면 장래에 큰일을 해낼 거”라는 기대를 받는다. 한편 동생 ‘헨리 듀리’는 묵묵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지만 이웃들은 그에게 좀처럼 관심이 없으며, 집에서 역시 장자인 형에게 밀려 뒷전이다. 그래도 좀처럼 불만을 내비치는 법이 없다. 이러한 성향은 중대한 선택 앞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자코바이트 봉기가 일어나자 듀리스디어 가문은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자 중도 노선을 취하기로 한다. 모두가 장자인 제임스가 집에 남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제임스는 자신이 출정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념을 따른다거나 동생의 위험을 대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활동적인 기질을 억누르지 못해서다. 결국 동전 던지기로 운명을 결정하기로 한 두 사람. 동전은 형 제임스의 출정을 가리키고, 헨리는 가문에 닥칠 비극을 예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순간을 뼈저리게 후회할 거야.”(25쪽)
자코바이트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고, 망명자 신세가 된 제임스 듀리는 해적선에 붙잡히고 인디언을 피해 배회하는 등 여러 고비를 넘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고통받는 것은 동생 때문이라고 여기고 복수를 결심한다. 증오와 복수의 대상이 정당한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출구 없는 고통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만큼 쓰라림을 잠재우는 손쉬운 방법은 없을 테다. 스티븐슨은 밸런트레이 귀공자라는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불합리한 감정이 어떻게 발전하고 주변 사람과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지 보여준다. 한편 동생 헨리는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형의 그림자에 가려져 무시당하면서도 묵묵히 집안을 꾸려가지만, 집으로 돌아온 형이 자신을 능욕하고 아내까지 건드리자 오랫동안 눌러온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악마를 닮아간다’라는 말처럼, 그는 형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안하무인에 오만하지만 매력적이고 사람을 잘 다루는 형, 착실하고 참을성 많지만 끝내 악의에 잠식당한 동생. 두 형제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절대 악과 절대 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양면을 지닌 하나의 동전이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선택하는 것인가. 《밸런트레이 귀공자》는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
육신을 찌르는 칼끝과 마음을 에는 겨울바람
스티븐슨의 작품이 발표된 19세기 후반은 영국의 제국주의적 확장은 극에 달한 때였다. 사람들은 세계 곳곳을 무대로 탐험과 정복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했고, 이는 다양한 모험담을 낳았다. 제임스 듀리, 즉 밸런트레이 귀공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보면 《밸런트레이 귀공자》는 복수극인 동시에 모험담이다. 그는 해적선에 잡혀가 고초를 겪지만 기지를 발휘해 해적들을 제압하며, 땅속에 묻힌 보물을 찾아 황무지를 헤맨다. 정복욕과 복수심은 시작점은 다를지언정 같은 속성을 공유한다. 힘의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것. 이러한 지배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팽배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소설에 붙은 부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겨울 이야기’. 거칠고 본능에 충실한 욕망이 불러오는 것은 살을 에는 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겨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