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Man and the Sea | 어니스트 헤밍웨이 ****| 황유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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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img src="/icons/aquarius_blue.svg" alt="/icons/aquarius_blue.svg" width="40px" />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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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단 한 번의 사투, 아득한 심해에서 건져 올린 반짝이는 삶의 진실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
팔십사 일 동안 고기를 낚지 못해 ‘운 나쁜 어부’라 낙인찍힌 노인 ‘산티아고’가 거대한 청새치 한 마리를 잡으려 벌이는 사투를 그린다. 노인은 마침내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항구로 돌아가는 길에 상어 몇 마리를 만나고, 결국 뼈만 남은 고기와 함께 돌아온다.
이 단순하고 사실적인 이야기와 문장들은, 그러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남기며 오늘날까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출간 당시 윌리엄 포크너, 허먼 멜빌 등에 비견되며 찬사를 받는 등 전작에 쏟아진 혹평 세례로 상심해 있던 헤밍웨이에게 다시금 날개를 달아준 소설이기도 하다. 원문의 호흡을 존중하고, 서술문과 대화문 간의 차이를 부각해 리듬감과 긴장감을 살려 새롭게 번역했다.
가장 적은 단어로 그려낸 완전한 세계 무한한 확장의 가능성을 지닌 불멸의 고전
《노인과 바다》는 “우리 시대 작가가 쓴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윌리엄 포크너의 찬사를 넘어서 출간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시대를 넘어선 생명력을 지닌 소설은 많지만, 짧고 단순한 줄거리로 이토록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작품은 《노인과 바다》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설은 때로는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는 불굴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로, 때로는 나이와 생물종을 초월한 우정에 관한 헌시로, 때로는 생태주의나 실존주의를 키워드로 읽힌다. 노인은 팔십사 일간 물고기를 잡지 못한 불운한 어부 ‘산티아고’ 그 자체였다가, 10년 만에 발표한 신작에 쏟아진 혹평으로 상심했던 헤밍웨이의 분신이 되기도 하며, 가끔은 예수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어떤 것을 구심점으로 삼아 읽어나가든 《노인과 바다》의 구조적 정합성은 쉽게 깨어지지 않는데,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이 작품이 얼마나 치밀하게 쓰였는지를 말해준다”라는 황유원 번역가의 해설처럼, 《노인과 바다》는 무한한 확장의 가능성을 지닌, 가장 적은 단어로 그려낸 가장 완전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번역본이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단순히 기존 번역본들의 오역을 답습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데, 역자는 어찌 보면 가장 당연하면서도 본질적인 부분인 헤밍웨이의 ‘문장’에 주목하며 그 도전에 임하기로 했다.(‘해설’ 중에서)
불필요한 수식을 배제한 사실적인 묘사를 의미하는 ‘하드보일드 문체’ 역시 헤밍웨이와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그러나 원래 《노인과 바다》는 쉼표로 이어진 복문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황유원 번역가는 소설 속 긴 서술문과 극도로 짧은 대화문의 차이에서 비롯한 긴장감과 리듬에 주목했다. 물고기를 토막 내듯 긴 문장을 임의로 끊지 않았고, 반대로 짧은 대화문을 늘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관광객이 뼈만 남은 청새치를 보고 “저게 뭐죠?” 하고 웨이터에게 묻자 웨이터는 짧게 답한다. “‘Tiburon,’ (……) ‘Eshark’.” 뼈만 남게 된 정황을 알려주고자 했으나 영어를 하지 못하기에 같은 의미의 두 단어만 나열한 것이다. 그러니 이를 “티부론입니다”라고 서술격 조사를 붙여 번역하면 오역이 된다는 것이다. ‘상어의 공격을 받아 뼈만 남게 됐다’는 설명을 ‘저것은 상어다’로 오해하는 것은 관광객이어야지 독자여서는 안 된다. 때문에 역자는 이를 “‘티부론.’ (……) ‘상어요’”라고 옮겼다. 이러한 원칙하에 건져 올린 문장들은 멕시코만의 모습을 보다 본래의 모습에 가깝게 그려내며, 날치가 튀어 오르고 청새치와 상어가 헤엄치는 지구 반대편으로 독자를 거뜬히 데려간다.
그가 이미 그걸 수천 번이나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제 그는 그걸 다시 증명해 보이려 하고 있었다. 매 순간이 새로웠고, 그걸 증명해 보일 때 과거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