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Passion Spent | 비타 색빌웨스트 | 정소영 옮김

흄세 레터

쉿, 이건 은밀한 이야기

풍부하지 않은 시절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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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5 사라진 모든 열정_표지 입체.jpg

<aside> <img src="/icons/aquarius_purple.svg" alt="/icons/aquarius_purple.svg" width="40px" /> “이제 어떤 모험도 닥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뻔한 옹졸함과 까탈스러운 삶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그것은 삶이란 막바지에도 뜻밖의 일을 무궁무진하게 마련한다는 사실을 잊은 오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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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여덟 해 동안 멈춘 적 없는 은밀한 날갯짓,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내면의 방문을 열 시간

🛋️ 국내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연인이자 소설 《올랜도》의 모델로 알려져 있으나, 당대에는 울프보다 더 인정받는 작가였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대표작이다.

정계의 거물이었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 비로소 마음대로 살기를 선언한 여든여덟 살의 주인공 ‘슬레인 백작부인’은 새로 얻은 ‘자기만의 집’에 머물며 결혼 이후 묻어두었던 어린 날의 열망과 다시 한번 마주한다.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오롯이 몰두한다는 점, 출간 당시 크게 흥행해 이 책을 출간한 호가스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했던 울프에게 금전적 여유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사라진 모든 열정》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편지’를 부록으로 실었다. 《사라진 모든 열정》은 관습에 얽매인 여성의 처지에 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노년의 삶에 대한 ‘아직 덜 늙은’ 이들의 환상 또한 깨트리는데, 한적한 동네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조용히 생활하기를 원했던 슬레인 백작부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마어마한 삶의 복잡함”을 몸소 겪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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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모든 열정》에 대하여


세상이 주고 싶어 하는 가장 좋은 것 말고 네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쟁취하기를

슬레인 백작부인은 정계의 거물이었던 남편 ‘슬레인 백작’과의 사별로 70년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아버지의 장례와 어머니의 거처 문제를 논의하려 한자리에 모인 자식들은 “어머니는 똑똑한 여자가 아니”니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자식들이 알아서 결정해주면 고마워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자신들과 번갈아 살 것을 제안하지만, 슬레인 백작부인은 자식 중 누구와도 함께 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한적한 동네로 옮겨 가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 살겠다는 것. 슬레인 백작부인은 계획대로 30년 전부터 점찍어둔 집을 빌리고, “태어난 날보다 죽을 날에 훨씬 더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면 주변에 두고 싶지 않다며 증손주들의 새집 출입을 금한다. 자기만큼이나 나이 많은 하녀인 ‘저누’와 단둘이 오롯한 자기만의 공간에 머물며 “살면서 처음으로, 아니 결혼 후 처음으로 다른 할 일이 없”게 되자, 묻어두었던 어린 날의 꿈과 욕망이 비로소 떠오르는데……. 이제 어떤 모험도 닥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뻔한 옹졸함과 까탈스러운 삶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그것은 삶이란 막바지에도 뜻밖의 일을 무궁무진하게 마련한다는 사실을 잊은 오산이었다.(166~167쪽)

슬레인 백작부인은 또래인 세 남성, 집주인 ‘벅트라우트’와 건축업자 ‘고셰런’, 남편이 인도 총독으로 재직할 당시 만난 적 있는 미술품 전문가 ‘피츠조지’와 자주 교류하며 한가로운 나날을 보낸다. 말년에 만난 사이답게 공감대를 나누며 꾸밈없는 관계를 이어나가지만, 그마저도 피츠조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깨지고 만다. 피츠조지가 자신의 유산 전부를 젊은 시절 흠모했던 슬레인 백작부인 앞으로 남긴 것. 자식들은 어머니와 피츠조지의 관계를 의심하며 온갖 추측을 내놓고, 신문들은 앞다퉈 슬레인 백작부인의 사진과 기사를 싣는다. 오랜 세월 동안 정치 명망가의 부인으로서 지겹도록 시달린 세간의 이목을 이제는 백만장자의 유산 상속인으로서 끌게 된 슬레인 백작부인은 이렇게 소리친다. “난 뭔가를 바란 적이 없어요, (……) 바란 것이라고는 비켜서 있는 것뿐이었죠. 그런데 세상은 도대체 그걸 허락하지 않네요! 여든여덟의 나이에도!” 다만 평화롭기만을 바랐던 슬레인 백작부인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다” 갖게 됨으로써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장면은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 대신 ‘남성이 주고 싶어 하는 것’을 받는 여성의 갑갑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엇비슷한 모양으로 단색의 풍경만이 남을 듯한 노년의 인생에도 예측 불가한 삶의 속성은 여전히 선명하게 작용함을 보여준다.

자신과 삶 사이의 균열은 남자와 여자의 균열이 아니라 일하는 자와 꿈꾸는 자의 균열이었다.(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