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Étranger | 알베르 카뮈 | 박해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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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img src="/icons/aquarius_red.svg" alt="/icons/aquarius_red.svg" width="40px" /> “오늘, 엄마가 죽었다. 혹시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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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햇볕보다 더 뜨겁고 강렬한 《이방인》이라는 단 하나의 태양
☀️세계문학사에 선명한 이정표를 세운 알베르 카뮈.
‘여름의 도시’라 불리는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성장한 카뮈의 문학에서 태양은 항상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해왔다.
《이방인》에서도 ‘뫼르소’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누구도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살인의 순간에 뫼르소의 뺨을 덮친 ‘태양의 불길’만큼은 우리의 머릿속에 뚜렷이 남는다. 장면마다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을 의식해서 읽었을 때 그 강렬한 소설적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자처하는 이방인 뫼르소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누구나 어딘가로부터 이방인이다.
“뫼르소는 그늘을 남기지 않는 태양을 사랑하는, 헐벗고 솔직한 사람이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에 대한 해석과 연구는 초판 출간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각지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캐릭터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에 가깝다. 엄마의 죽음에도 슬퍼할 줄 모르는 냉혈한, 예수는 물론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적그리스도, 혹은 시대와 사회에 반항하는 아웃사이더…… 이 모든 표현이 뫼르소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동시에 어떤 표현도 뫼르소를 정확하게 지칭하지는 못한다. 뫼르소는 세계문학사에서도 가장 복잡다단하고 불가해한 캐릭터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런데 카뮈 스스로는 《이방인》의 ‘미국판 서문’을 통해 뫼르소를 “그늘을 남기지 않는 태양을 사랑하는, 헐벗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태양은 숨 막히는 열기로 인간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지만, 그늘 속에 움츠린 인간을 끌어내기도 한다. 카뮈는 투박하고 삐걱댈지언정 “거짓말하기를 거부”(‘미국판 서문’)하고 세상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는 뫼르소의 독특한 열정을 태양에 비유해 설명한 것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혹시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9쪽)
엄마가 죽은 날을 헷갈리는 뫼르소의 이 유명한 독백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장례식을 치르고 태연하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주말에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 적 있는 ‘마리’를 만나 해수욕을 즐기고, 함께 희극영화를 보며 연인이 되어간다. 특별한 계기 없이 가까워진 이웃 ‘레몽’과 담배를 피우거나 포도주를 나눠 마시는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레몽과 그의 친구 ‘마송’, 마리 등과 알제 외곽의 바닷가로 소풍도 떠난다. 그런데 거기서 아랍인 무리와 시비가 붙고, 뫼르소는 우발적으로, 혹은 “때양 때문”에 아랍인에게 다섯 발의 총탄을 쏜다. 단순해 보이는 이 살인 사건은, 그러나 뫼르소가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으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검사는 사건의 정황보다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뫼르소의 비정함을 파고들며, 점차 뫼르소를 사형의 위기로 내모는데…….
뫼르소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을 귀찮아하고 자기 외의 세계에 무관심한 인물이다. 사형선고를 받을 난처한 상황에서도 살인을 후회하느냐는 물음에 “권태로움을 절감한다”라고 무미건조하게 답할 뿐이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존속 살해범과 같은 ‘패륜아’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 모든 것이 “하나 마나 한 소리”일 뿐이며, 살인의 동기를 오직 “태양 때문이었다”라고 밝히면서 법정의 웃음거리가 되기를 자처한다. 카뮈가 거칠게 요약했던 것처럼 뫼르소는 “규범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았다. 좀 더 역설적인 명제로 설명한다면 “엄마의 장례식 때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에 놓인다”(‘미국판 서문’)라는 것이다. 그런데 “울어야 할 때 울지 않는 것. 자신의 행동을 납득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 살려고 애쓰지 않는 것. 그게 나쁜가?”(소설가 정용준 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