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y Gayheart | 윌라 캐더 | 임슬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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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img src="/icons/aquarius_red.svg" alt="/icons/aquarius_red.svg" width="40px" /> “호수에서 불어오는 날카로운 바람이 루시 안에 뜨거운 생의 열정을 불어넣었다. 불꽃을 마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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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미래로 가라앉은 한 시절 뜨거웠던 삶들
☃️ 미국의 대표적인 지방주의 작가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윌라 캐더의 초역 소설.
피아니스트가 꿈인 ‘루시’가 고향을 떠나 도착한 시카고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성악가였던 ‘서배스천’의 보조 연주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얼음층을 깨부수고 나가려는 루시. 깊고 우울한 호수인 서배스천. 날씨는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구는 돌산 같은 ‘해리’의 삼중주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때 뜨거웠던 삶이 지나가고 그 위에 쌓이는 기억과 망각을 촘촘하게 엮어내며, “동경하기를 그만두고 기억하기를 시작하자 삶이 시작되었다”라는 캐더의 유명한 문장을 곱씹게 한다. 쌓여가는 시간 위로 희미해지는 삶을 기억하는 일의 숭고함을 부드럽게 보여주는 캐더의 마법 같은 능력도 엿볼 수 있다.
기억에 관한 소설이자 기억 속에서 전개되는 소설
피아니스트가 꿈인 루시는 고향을 떠나 시카고에 도착한다. 우연히 국제적으로 유명한 성악가였던 서배스천의 공연을 보고 매료되어 그의 반주자가 되는 데까지 성공한다. 그때 서배스천은 생을 향한 열정이 식어 남몰래 무기력과 환멸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생의 기쁨이 발에” 있는 듯한 루시의 빛나는 젊음에 매료되고, 점차 둘은 인간적인 존경을 넘어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한편 고향에서 가장 부유했던 해리 고든은 루시에게 청혼하지만 루시는 “무언가를 지향”하는, 뿌리 박히느니 “뽑혀서 내쳐”지겠다는 마음을 품은 여자였다. 심지어 그때는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바람 같은 장난이라고 여기는 해리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얼마 후 유럽 투어를 떠난 서배스천이 그곳에서 불의의 사고를 맞닥뜨리고, 실의에 빠진 루시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마을에는 루시를 향한 이상한 소문이 퍼지게 되는데……. “다른 생과 감정”을 암시하는 별에 손을 뻗으며 압도되었던 루시는 “즐거운 것을 향해 서두르듯” 걸었지만 이제는 “도망치려고, 아니면 그저 몸을 혹사하려고” 걷는다. 루시는 다시 삶을 갈망할 수 있을까? “저 먼 곳의 아득한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어 붙잡으려 하는 열렬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
만약, 만약 생 그 자체가 연인이라면? (……) 아, 이제는 알았다! 루시는 가져야만 했다. 도망칠 수 없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그의 정체성을 이루는 모든 것을 손에 넣어야 했다.(192쪽)
《루시 게이하트》는 기억에 관한 소설이자 기억 속에서 전개된다. 하나의 사건과 삶을 주도적으로 서술하는 화자가 없으며, 대부분 화자는 과거와 화해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하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기도 한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삶과 이해의 시간차다. 서배스천은 모퉁이만 돌면 생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되살아나리라 믿지만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릴 운명”이라는 것을 씁쓸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나아가고 있는 루시를 자꾸만 불러세운다. 해리는 먹고사는 문제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쪼그라든 현재를 살아간다.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루시에게도 자신과 함께 현재에 눌러앉자고 종용한다. 반면 루시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 다른 생과 감정”을 갈망하며 손을 뻗는 사람이다. 잠재적으로 고갈될 수 없는 미래를 헤쳐나간다. 사회적으로 지위를 얻으려면 ‘남자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결코 “자신을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런 무례라니, 이런 모욕이라니, 상상도 못 했다! 루시는 젊고 튼튼했으며, 세상이 자신을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작정이었다.”(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