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Gatsby | F. 스콧 피츠제럴드 | 황유원 옮김
흄세 레터
📢 93년 만에 국내에 처음 번역된 《왈츠는 나와 함께》 & 《위대한 개츠비》 초판 출간 100주년 기념 출간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왈츠는 나와 함께》&《위대한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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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img src="/icons/aquarius_red.svg" alt="/icons/aquarius_red.svg" width="40px" /> “우리, 오늘 오후에는 뭘 하지?” 데이지가 외쳤다. “그리고 내일은? 또 앞으로 이어질 30년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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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한 편의 시이자 소설!” 시인의 번역으로 다시 읽어야 할 명작
🌱 “미국 소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
1924년 여름, 스물여덟 살의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담당 편집자인 맥스웰 퍼킨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초고를 두고 “지금껏 쓰인 미국 소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만만한 그의 말과는 다르게 1925년 4월에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는 1940년 피츠제럴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에게 ‘가장 위대한 작품’에 걸맞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위대한 개츠비》가 큰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피츠제럴드의 작가 인생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음주와 과소비, 외도, 자살 시도…… 아내 젤다가 신경쇠약과 조현병 등으로 정신병원을 드나든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러나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의 사후에 드라마틱하게 재평가를 받으며 정말로 “미국 소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되었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며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국내에도 여러 번역본이 존재하지만, 초판 출간 100주년을 맞아 시인이자 번역가인 황유원이 까다로운 어휘 감각과 조사 하나까지 민감하게 깎아내는 문장 세공력으로 새로이 번역했다.
작가의 의도를 거스르지 않는 번역, 단편소설 분량의 풍부한 해설
소설은 얼핏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보이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당차게 신분 상승을 꿈꾸던 개츠비는 상류층 여성 데이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전쟁으로 데이지와 헤어지게 되고, 그를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불법적인 사업에까지 손을 대며 막대한 부를 쌓는다. 그리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데이지 집 근처의 대저택을 매입한 뒤 매일 화려한 파티를 연다. 과거의 사랑을 천천히 되돌리는 듯했던 개츠비는, 그러나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며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격류 속으로 빠져들고 마는데…….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함은 줄거리에는 드러나지 않는 다층적인 함의가 가득하다는 점과 “미학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문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시와 소설이 완전히 일체화”(‘해설’에서)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원문이 완벽에 가까운 만큼 옮긴이 황유원은 번역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테면 제3장 첫 문단에서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의 파티를 묘사하며 “그의 손님들”, “그의 잔교”, “그의 해변”, “그의 롤스로이스”, “그의 스테이션왜건” 등 ‘그의’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데, 한국어 번역이나 편집 과정에서 지워지기 일쑤인 이런 반복을 개츠비의 소유물임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보고 그대로 살려 번역했다. 나아가 웃음을 칵테일에 비유해 그것이 술처럼 ‘쏟아지고’ ‘엎질러지고’ 만다는, 소설에서는 다소 어색할 수 있는 표현들도 작가의 ‘시적’ 의중을 살려 의역하지 않고 모두 직역했다. 또한 일명 ‘보브 컷’으로 불리는 단발머리는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다양하게 묘사되는데, 이를테면 ‘a solid, sticky bob of red hair’는 ‘solid’가 ‘층을 내지 않고 일자로 자르는 스타일’을 말하므로 “칼같이 일자로 잘라 착 달라붙는 붉은색 단발머리”로 옮겨서 그것이 한눈에 이해되도록 했다. 그 밖에도 옮긴이는 작가의 의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에도 세심하게 대응했고, 단편소설 분량의 풍부한 해설로써 우리를 ‘개츠비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대체 불가한 ‘작가들의 작가’ 피츠제럴드,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헤집는 불멸의 고전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디스 워튼, 무라카미 하루키, T. S. 엘리엇, 거트루드 스타인, J. D. 샐린저…… 모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대작가의 찬사를 받은 F. 스콧 피츠제럴드. 이들이 주목했던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함’이 각기 다른 부분에서 기인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T. S. 엘리엇은 《위대한 개츠비》를 두고 “헨리 제임스 이후 미국 소설이 내디딘 첫걸음”이라며 소설의 독창적인 문법에 찬사를 보냈고, 거트루드 스타인은 “이 소설로 동시대를 창조”해냈다면서 ‘재즈 시대’로 일컬어지는 1920년대의 화려함과 속물성을 고스란히 그려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소설 바깥의 평가는 물론이거니와 소설 내부에서 엿볼 수 있는 복합적인 주제도 작품의 해석을 좀 더 다층적이고 풍부하게 만든다. “새로운 무언가, 비범하고 아름다우며 단순하고도 복잡한 패턴을 지닌 무언가”를 쓰고 싶다던 피츠제럴드의 바람대로 《위대한 개츠비》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사회경제적 계급 간의 충돌, 진짜와 가짜의 문제, 아메리칸드림의 허상 등을 “단순하고도 복잡한 패턴”으로, “비범하고 아름”답게 묘파한다.
소설의 무대인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는 “똑같은 외형”을 지녔지만 최신 유행을 따르는지에 따라 극명하고 상징적으로 나뉜다. 화자인 ‘닉 캐러웨이’와 개츠비는 “최신 유행을 덜 따르는 쪽인 웨스트에그”에 살고, 그 건너편이자 “최신 유행을 따르는 이스트에그의 새하얀 궁전들”에는 ‘톰’과 데이지 부부가 산다. 그리고 두 지점 사이를 “잔교의 맨 끝에서 아주 작게 빛나는 초록색 불빛 한 점”이 만들어내는 가느다란 선이 간신히 잇는다. 소설 전반에 분명한 색감을 더하는 ‘초록색 불빛’은 그 자체로 ‘비범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영원히 “최신 유행을 따르는” 반대편의 ‘저쪽’을 동경했던 개츠비의 삶을 상징적이고 아슬하게 드러내 보이는 효과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초판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가장 완전한 《위대한 개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