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빛과 예견할 수 없는 삶의 소용돌이 속으로 혼자 걸어 들어간 사람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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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가뭄은 그의 목숨을 앗아 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_《메마른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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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세 시즌 7이 소개된 영상📹

매거진 흄세


031 이방인

032 루시 게이하트

033 메마른 삶

041 결혼식을 위한 쾌적한 날씨

035 값비싼 독 


가뭄을 소나기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 책에서는 날씨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미국인 청구인》의 ‘서문’ 격의 글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장황한 날씨 묘사가 독서의 흐름을 방해한다면서요. 그러나 실제로는 날씨와 관련한 몇 장면을 등장시켜 자명하게 실패하는 것으로, 소설과 날씨가 멀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도리어 뚜렷하게 보여주죠. 여러분의 삶에서는 어떤가요?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 인생이 뒤바뀐 결정적인 순간이나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그때의 날씨로 기억하지는 않나요?

누구나 아는 소설이지만, 그래서 주인공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이방인》의 ‘뫼르소’도 그렇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하고도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한 채 살인을 하던 순간에 ‘요동치던 햇빛’만 떠올릴 뿐이죠. 《이방인》은 장면마다 뜨겁게 내리쬐는 지중해의 태양을 의식해서 읽었을 때 그 강렬한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루시 게이하트》는 겨울 한낮의 햇살 아래서 루시를 추억하는 마지막 몇 문장이 압권입니다. 작가가 이 몇 문장을 적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닐까 느껴질 정도로요. 결혼식 날에 폭풍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얼렁뚱땅 딸의 결혼을 해치우려는 《결혼식을 위한 쾌적한 날씨》의 ‘대첨 부인’은 “결혼식 날에 날씨가 참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합니다. 돌연히 나타난 옛 애인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딸의 마음도 모른 채요. 《메마른 삶》에서는 가물고 황량한 땅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미래에 작은 불행의 불씨라도 댕기게 될까봐 책장을 넘기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집니다. 우리가 가뭄을 소나기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척박한 운명을 개척해가는 이들의 분투에 가만히 마음을 보태게 됩니다. ‘장애를 가진 가난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용감하게 맞서고도 자욱한 안개 너머로 소중한 이들을 잃고 마는 《값비싼 독》의 ‘프루’에게도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7의 테마는 ‘날씨와 생활’입니다. 눈부신 햇빛과 걷잡을 수 없는 삶의 소용돌이 속으로, 담대하게 걸어 들어간 사람들의 곁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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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이방인 알베르 카뮈 | 박해현 옮김

한여름의 햇볕보다 더 뜨겁고 강렬한 《이방인》이라는 단 하나의 태양

세계문학사에 선명한 이정표를 세운 알베르 카뮈. ‘여름의 도시’라 불리는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성장한 카뮈의 문학에서 태양은 항상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해왔다. 《이방인》에서도 ‘뫼르소’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누구도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살인의 순간에 뫼르소의 뺨을 덮친 ‘태양의 불길’만큼은 우리의 머릿속에 뚜렷이 남는다. 장면마다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을 의식해서 읽었을 때 그 강렬한 소설적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자처하는 이방인 뫼르소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누구나 어딘가로부터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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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루시 게이하트 윌라 캐더 | 임슬애 옮김

얼어붙은 미래로 가라앉은 한 시절 뜨거웠던 삶들

미국의 대표적인 지방주의 작가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윌라 캐더의 초역 소설. 피아니스트가 꿈인 ‘루시’가 고향을 떠나 도착한 시카고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성악가였던 ‘서배스천’의 보조 연주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얼음층을 깨부수고 나가려는 루시. 깊고 우울한 호수인 서배스천. 날씨는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구는 돌산 같은 ‘해리’의 삼중주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때 뜨거웠던 삶이 지나가고 그 위에 쌓이는 기억과 망각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희미해진 삶을 기억하는 일의 숭고함을 부드럽게 보여주는 캐더의 마법 같은 능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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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메마른 삶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 임소라 옮김

갈라진 땅, 그리고 메마른 삶……
브라질 문학의 위대한 성취이자 희망과 삶에 대한 엄숙한 찬가

20세기 브라질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인 그라실리아누 하무스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윌리엄 포크너 재단상을 안겨준 작품. 작가도 작품도 국내 첫 소개. 이야기는 극심한 가뭄이 삶의 모든 것을 앗아 간 뒤 “덜 메마른 곳”을 찾아다니는 ‘파비아누 가족’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들은 메마른 땅에서 시들어가면서도 부서지지 않는 희망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하무스는 이를 건조한 문체로 묘사하지만 독자는 어느덧 그들의 삶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반려견 ‘발레이아’의 시선으로 가족을 바라보는 장면은 브라질 문학사에서 가장 뭉클한 에피소드로 꼽혔고, 출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으며 브라질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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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결혼식을 위한 쾌적한 날씨 줄리아 스트레이치 | 공보경 옮김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삶들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유별나고 괴상하지만 ‘쾌적한’ 결혼식 파노라마

버지니아 울프가 “드물게 완벽하고 개성이 있다”라고 극찬했던 줄리아 스트레이치의 대표작. 작가도 작품도 국내 첫 소개. 울프의 호가스 출판사에서 덩컨 그랜트의 표지 디자인으로 출간되었다. ‘돌리’의 결혼식을 앞두고 모여든 사람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소설로, 결혼에 확신이 없는 신부와 불쑥 나타나 돌리를 뒤흔드는 전 애인 ‘조지프’, 잿빛 하늘에 거센 바람이 부는데 날씨가 좋다는 말을 반복하는 신부의 엄마 ‘대첨 부인’까지. 저마다의 이유로 격앙되는 등장인물들은 그것이 자신의 마음 때문인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 탓인지 점점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상대를 속이는 것보다 자신을 속이는 것이 쉬운 사람들, 그렇게 모두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어서 어떻게든 굴러가는 삶을 기괴하고 ‘쾌적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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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값비싼 독 메리 웨브 | 정소영 옮김

여성, 장애, 가난…… 짓눌리지 않는 청명한 사랑에 대하여

1926년 페미나상 수상작이자 초판 출간 100년 만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메리 웨브의 대표작. 장애와 편견을 거슬러 자신의 운명마저 개척해나가는 사랑스러운 여성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웨브는 영국 슈롭셔의 사계절을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하는데, 웨섹스를 완벽한 소설의 무대로 꾸며놓은 토머스 하디와 자주 비견되곤 한다. 무엇에도 짓눌리지 않는 청명한 사랑의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