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고 어려웠던 지난날의 나를 보듬을 때 비로소 되살아나는 소중한 삶의 미각
<aside> <img src="/icons/sun_gray.svg" alt="/icons/sun_gray.svg" width="40px" /> “만찬 식탁에는 순백의 보자기가 깔려 있고, 수줍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_《은수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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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며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왔습니다. ‘잘 먹으라’는 말과 ‘잘 지내라’는 말이 한 쌍인 것처럼요. 어떤 음식은 잊고 있던 시절로 곧장 데려다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먹어온 음식들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고 말하는 듯하죠.
《식탁 위의 봄날》의 주인공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인 밥 먹는 일이 자신을 구원할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습니다. 익숙한 단편이라도 음식을 주목해서 읽으면 다르게 와닿고, 그간 번역된 적 없는 〈힘들게 얻은 과일의 작은 흠집〉, 〈식탁 위의 큐피드〉도 함께 선보 입니다. 《크리스마스 잉어》의 등장인물들은 삶의 고통이 짙게 밴 식탁에 앉습니다. 전쟁 전 평화롭던 과거를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만찬과 백화점 진열대에 쌓인 음식 앞에서 앓는 치통까지. 그들을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지?” 《은수저》의 주인공은 따뜻한 시선으로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입이 짧은 주인공을 돌보던 이모가 음식으로 지은 우화를 들려주며 밥을 먹였던 일. 가자미 요리를 양껏 해주고는 주인공이 먹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던 일화까지.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주고받는 사랑의 풍미가 얼마나 깊은지 알려주죠.
《치즈》의 주인공은 “먹는장사는 망할 일이” 없다며 치즈 사업에 뛰어드는데요. 30년을 사무직으로 일한 샐러리맨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기 앞에 ‘치즈의 세계’가 활짝 펼쳐져 있다며 들뜨죠. 가족들은 그를 불안하게 바라보지만 변치 않는 믿음으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초역 SF입니다. 먹으면 몸집이 거대하게 자라는 ‘신들의 양식’을 실험하기 위해 닭에게 먹였다가 벌어지는 일을 따라가는데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간을 비판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사회를 드러냅니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6의 테마는 ‘소중한 것일수록 맛있게’입니다. 식욕을 자극하고, 몸과 마음에 공복이 없는 다섯 작품으로 차린 연회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026 식탁 위의 봄날 오 헨리 | 송은주 옮김
삶이 차갑고 우울하게 느껴질 때 식탁 위에서 펼쳐보는 오 헨리 트위스트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단편 〈힘들게 얻은 과일의 작은 흠집〉, 〈식탁 위의 큐피드〉와 〈크리스마스 선물〉, 〈마지막 잎새〉 같은 오 헨리의 대표작 18편을 모았다. ‘반전의 대가’의 작품답게 허를 찌르는 결말과 곳곳에 숨겨진 음식에 연관한 복선을 찾아 읽는 즐거움이 있다. “나는 우울할 때 오 헨리를 읽는다”라는 전기 작가 로버트 데이비드의 말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오 헨리 단편의 매력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준다.
027 크리스마스 잉어 비키 바움 | 박광자 옮김
비밀스러운 기쁨, 굶주림과 기다림, 극심한 치통...... 먹고사는 슬픔을 희망으로 소화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삶의 압박감과 절망감을 견디는 와중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단편 네 편을 실었다. 국내 초역. 크리스마스에 잉어 요리를 내놓길 바라는 ‘말리 이모’가 나오는 〈크리스마스 잉어〉. 먹는 행위 자체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길〉과 〈굶주림〉. 쌓여 있는 음식 앞에서 지독한 치통을 앓는 〈백화점의 야페〉의 주인공까지. 이들을 따라가다보면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지?”
028 은수저 나카 간스케 | 정수윤 옮김
맑은 영혼으로 바라보는 한 시절, 함께 밥을 먹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채우는 삶의 공복
도미, 두부, 가자미, 자두, 밤송이, 담죽 등 음식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식욕이 돋고, 어린 시절을 가만히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추억이 밀려온다. 어린아이의 맑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자연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옮겼다. 일본 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꼽히며 나쓰메 소세키가 극찬한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029 치즈 빌럼 엘스호트 | 금경숙 옮김
찬란한 미래에 굶주린 직장인들에게 펼쳐진 외롭고
지금까지 37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며 플란데런 문학의 필독서로 꼽히는 작품. 한 직장에서 30년 넘게 일한 주인공은 “먹는장사는 망할 일이 없어”라는 위험한 부추김과 “회사원에게는 거룩한 뭔가가 없지. 그저 맨몸으로 이 세상에 서 있는 인생들인걸”이라는 자조적인 성찰에 빠져 난데없이 치즈 사업을 시작한다.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서사는, 그러나 “누가 내 발을 밟아도 발끈하지” 못하는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눅진하게 가닿는다.
030 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 허버트 조지 웰스 | 박아람 옮김
먹을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어떤 선택도 잘못일 수밖에 없는 비틀린 인간에 대하여
‘SF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초역 소설. 병약하고 작디작은 화학자와 성장곡선에 집착하는 생리학자가 먹으면 몸집이 거대하게 자라는 ‘신들의 양식’을 개발하면서 벌어지는 대혼란의 세상을 그린다. ‘신들의 양식’이 만들어낸 세계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각자의 감식안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